1. 인터뷰

65세 현역 프로 서퍼 미나미 히데시로. 캘리포니아의 빅웨이브에 도전하는 일본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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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스포츠인지 알려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나미 히데시로이다. 그는 세계 5대 빅웨이브 중 하나인 마버릭스에 도전하며 활약하는 일본인 프로 서퍼로 유명하다. 또한, 미나미 히데시로는 라쿠텐이 후원하는 냇 영, 고바야시 케이, 무라카미 슌 등 정상급 서퍼들의 신뢰를 받으며 이들의 스폰서십 체결을 연결하는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서핑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을 통해, 서핑이 지닌 매력을 조명해본다.

17세, 첫 서핑은 우연한 시작에서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제2차 서핑 붐이 일었다. 도쿄 메구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미나미는 스키 선수로서의 진로를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고2 여름, 그는 서핑과 처음 마주했다. 중학교 시절 들어간 ‘도쿄 스포츠맨클럽’ 여름 합숙에 참여한 선배가 기분 전환 삼아 가져온 서핑보드 한 장이, 그의 운명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저는 스키를 꽤 잘 타고 있었고, 앞으로 어떤 종목으로 나아갈지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여름 합숙 때 선배가 ‘이거 한번 해봐’ 하며 서핑 보드를 건넸죠. 처음에는 파도 위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재미를 느껴 주 1회씩 바다를 찾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보드 위에 설 수 있게 된 건 시작한 지 약 한 달쯤 지난 후였다. “서핑은 정말 깊이가 있는 스포츠입니다.”라고 밝게 말하는 미나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은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에는 금방 싫증을 느끼잖나요. 서핑은 조수 간만, 조류, 기상 상황 등 매번 다른 파도에 도전해야 하기 때문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기분 전환 삼아 우연히 시작했지만, 어느새 서핑에 빠진 미나미 선수. 그러나 이때 그는 서핑이 자신의 평생을 바칠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22세, 학업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사실 미나미는 오사카에서 오래 이어져 온 침구원의 6대 후계자다.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로 길러졌고, 침구사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환자들에게 감사받는 것을 보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6대 후계자라는 무게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제가 젊었을 때 일본은 다소 폐쇄적이었고, 침구원도 주로 연세 있는 분들만 치료하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후계자로서 필요한 자격은 취득한 뒤 일본을 떠났습니다. 원래 학생 시절부터 모범생 타입은 아니었죠.”

자유로운 삶을 꿈꾼 그는 우연히도 전 세계 서퍼들의 성지, 캘리포니아를 선택했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학업에 매진하며 일본과 다른 의료 제도를 배우고 현지 자격을 취득했다. 나아가 미국 영주권을 얻고, 직접 클리닉도 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는 공부와 가라테에 집중하느라 서핑은 주 1회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때 서핑에 좀 더 매진했더라면 더 많은 기록을 남겼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해외에서 동양의학과 통합의학을 전파하는 것이 제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환자들의 맥을 느끼고, 한약과 뜸의 향기를 맡으며 자랐으니 자연스레 제 피가 되어 흐른 거죠. 그래서 미국에서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이건 제 blood(피)입니다’라고 답합니다.”

모든게 선조들의 덕이라며 자신의 ‘blood’를 강조하던 그의 실력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고, 결국 VIP들에게까지 닿았다. 무도로 기(氣)와 하체를 단련하고, 서핑으로 바다에서 에너지를 얻어 환자를 치료하는 것—그가 구축한 이 멋진 라이프스타일 역시 결국 서핑이 만들어준 결과라고 그는 말한다.

“서핑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이완될 때 나타나는 뇌파, 이른바 ‘α파’가 많이 나옵니다. 패들링을 하고, 파도를 기다리며 바다의 냄새와 소리를 온전히 느끼는 과정이 면역력 향상과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적이죠. 그래서 저는 여름철에는 치료의 일환으로 환자들에게 서핑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자연 속에서 오감을 깨우는 경험은 결국 셀프케어로 이어집니다. 서핑을 통해 제가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예방의학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설득력이죠.”

37세. 인생을 바꾼 ‘매버릭스’와의 만남

미나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세계 5대 빅 웨이브 중 하나로 꼽히는 ‘매버릭스(Mavericks)’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위치한 이 서핑 포인트는 수온 약 12도, 겨울철에만 열댓 번 나타나는 10미터 이상의 거대한 파도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미나미는 왜 이 혹독한 조건에 도전했을까.

“계기는 매버릭스를 개척한 프로 서퍼, 제프 클라크의 존재였습니다. 유학 시절 머물던 집의 가장이 몰몬교 목사였는데, 그분의 절친한 친구의 아들이 바로 제프 클라크였죠. 그 인연으로 제프 클라크의 아버지가 저를 그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후 둘은 현지 대회나 이벤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부상이 잦은 제프를 위해 미나미가 직접 치료와 케어를 맡기도 했다.
“제프는 “치료비 대신”이라며 직접 만든 보드를 선물로 줬어요. 매버릭스 같은 거대한 파도에 맞설 수 있는 ‘빅 웨이브 건(Big Wave Gun)’이라는 특수 보드였죠. 한동안 집에 장식해 두었는데, 보기만 하자니 아까워서 직접 타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1996년, 마크 후(Mark Foo)라는 중국계 하와이안 출신 전설적 서퍼가 매버릭스에서 목숨을 잃은 바로 다음 시즌이었어요.”

첫 도전은 거대한 파도는 아니었지만 성공적이었다. “운이 좋았어요.” 그 한마디처럼, 그는 이후 완전히 매버릭스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일과 생활 리듬을 서핑 중심으로 바꾸고, 훈련에 몰두했다.

“매버릭스는 한 번의 실수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곳입니다. 저도 어깨, 무릎, 갈비뼈 등 수많은 부상을 겪었고, 여러 번 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서 큰 파도가 몰아치는 겨울에는 일본에 가지 않습니다. 모든 걸 바치지 않으면 설 수 없는 장소니까요.”
지금까지 매버릭스에 도전한 아시아인은 그가 유일하다. 그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일본인으로서 지고 싶지 않다”는 강한 자존심이었다.

65세. 평생 현역을 향한 도전

“무도, 의료, 서핑이 서로 맞물려 시너지를 내니까 매일이 참 즐겁습니다.” 2017년 그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 『도전적 슬로우 라이프를 만드는 법』을 출간했다. 그 영향으로 일본의 젊은 서퍼들도 하나둘 매버릭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의 강자들이 모이는 그곳은 지금도 ‘끝없는 도전의 무대’로 남아 있다.

“지금껏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그냥 두고 싶지 않습니다. 후계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직 제 기록은 깨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기록을 뛰어넘을 후배들이 나타날 겁니다. 그들에게 제가 배운 것을 전하며, 언젠가 매버릭스 세계대회에서 일본 국기가 올라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는 “서핑은 일본인 체격과 신체 능력으로도 세계와 맞설 수 있는 스포츠”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일본 서퍼들의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지만, 여전히 서핑은 ‘비주류 스포츠’에 머물러 있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프로 서퍼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서핑이 주요 프로 스포츠로 자리 잡아야 하죠. 차세대 서퍼를 지원하고, 일본을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최고령 현역 서퍼’로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다.

“결국은 제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매버릭스에 도전하려면 트레이닝이 필수고, 식사와 술도 조절하며, 파티도 자제할 수밖에 없죠. 생활습관을 바로잡으면 결과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95세까지는 현역으로 있고 싶네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서핑의 매력이다. 미나미의 도전과 열정, 그리고 그가 만들어온 ‘살아 있는 철학’은 앞으로도 바다 위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도전적 슬로우 라이프를 만드는 법』(의도의 일본사)

PHOTO: Brett Downen, Takeo Tomine, Fred Pompermayer, Sumiki Osawa
TEXT: 키스케 혼다
EDIT: 요스케 와타나베 (IN FOCUS)

  • 서퍼
    미나미 히데시로

    1959년 오사카의 붉은 벽 침구원의 6대째로 태어난다. 일본에서 침구사의 자격을 취득 후, 1982년에 도미. 1985년, Canada College 호텔 매니지먼트 졸업. 1988년 샌프란시스코 동양의과대학 졸업. 1989년, 캘리포니아 주 침구 한방 약제사 면허를 취득. 동주에서 침구와 서양의학을 통합한 진료소를 개설. 1997년, 전미 가라데 선수권형 우승. 오키나와 소나무 숲 가라테도 5단, 야마네 유고 무술 2단, 샌프란시스코 통 신흥 부련장, Odyssey 중학교 교사. 2020년 사단법인 플래티넘 에이지 진흥회에서 스포츠, 의료 부문상 수상. 프로서퍼로서의 얼굴도 갖고, 일본인으로 유일하게, 세계 5대 빅 웨이브의 하나 「마버릭스」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2017년, 「「도전적 슬로우 라이프」의 만드는 방법」(의도의 일본사)를 상척.

    <스폰서> GoPro Inc, BeWET, Blue Evolution, Nor Cal, SSP, OCN, kindhumans, (주)의도의 일본사, Holisticland, Inc., Raku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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